[AoN] 삽화와 3D CG...그리고 추정보도의 함정



<아덴만 여명작전 뉴스에 대해 SBS 뉴스비평 프로그램에서 '지나치게 상세한 보도' '과도한 홍보성 기사'였다고 비판했다>

지금이야 3D CG가 방송사마다 널리 보급돼 대형 사건 사고가 일어날 경우 삼차원 고화질 그래픽 영상으로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해
시청자들이 이해를 돕지만, 필자가 처음 기자가 됐을 때만해도 '삽화'라는 단순한 그림으로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살인 사건이나 교통사고, 혹은 군사작전의 경우에는 생생한 현장그림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그 일이 벌어졌을 당시에 그곳에 카메라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사건 후에 촬영한, 휑~한 현장 화면만 가지고는 보도할 수 없으니까, 궁여지책으로 '삽화'를 그렸다.

삽화란...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등장할 만한 수준의 단편적인 그림인데, 살인 현장이나 법원 판결을 다루는 뉴스에서 많이 쓰였다.
그런데 삽화를 몇번쯤 사용했을 땐가? 고참 선배가 '삽화'를 썼다는 이유로 조용히 나를 불러 나무랐다.

기자, 특히 방송 기자의 보도는 '있는 사실'과 '취재된 사실'만 보도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는데, 여기서 '삽화' 사용에 대한 논란이 생기는 것이다. 기자에 따라선 '삽화'는 기자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가공된 혹은 조작된 그림으로 '팩트'가 아니다. 어쩌면 팩트와 반대일 수도 있다.
보도의 편의성이나 시청자의 이해, 또는 시청률을 위해서 '삽화'를 그리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다행히 당시 목격자의 증언이나 경찰의 현장검증 같은 구체적인 근거가 있다면 삽화도 보다 '사실'에 가까울 수 있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닐 경우에는 '피해자의 위치와 방향' 혹은 '흉기의 위치' '발화 장소'와 같은 중요한 팩트들이 순전히 기자 개인의 상상에 의존하게 되며, 이는 시청자들에게 진실을 전해야 하는 언론 노동자의 소임을 어긴 게 된다.

여기서,
작년, 2011년 방송3사가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아덴만 여명작전의 문제점을 얘기해 볼까 한다. 방송사들은 앞다퉈 삼차원 고화질 그래픽을 동원해 우리 해군의 활약상을 보도했다. 3D CG가 그럴듯하게 불을 뿜으며 마치 최신 RPG 게임을 보는 듯한 영상들을 보여줬는데, 아...저렇게 해적들을 진압했구나...하고 시청자들은 이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스운 건, 당시에 그 보도를 했던 기자들은
우리 해군이 구체적으로 어떤 무기를 사용했는지, 몇명의 병력이 배 위로 올라갔는지, 삼호 주얼리호의 어느 위치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는지...제대로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필자 또한 당시 그 뉴스를 리포트했던 기자로서 매우 반성하고 있다 ㅠㅜ)

상상이었던 것이다.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사건 사고를 재구성하는 3D CG 보도는 계속 늘어날 텐데,
'삽화'를 썼다고 나를 나무랐던 그 선배처럼 과연 그 CG들의 '팩트'가 맞느냐에 대한 고민은 누가 할지....

아, 참. 일본에 출장 갔을 때 숙소에서 NHK의 종합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듣지는 못했고ㅠㅜ)...
어떤 강력 사건인지는 몰라도,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는 건물 외경만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사건을 보도하는 걸 봤다.
당연히 더 재미도 없고, 구체적인 정황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지겠지만,
적어도 기자의 '상상력'이 아니라 '기자가 취재한 사실'만을 보도해야 한다는 원칙론적인 직업 정신은 인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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