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oN] 중국 공안을 감쪽같이 속인 키홀더몰카





지난 2011년 5월 20일, 사망한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전격 중국을 방문했다.
김 전 위원장의 중국 방문 시기를 놓고 설왕설래가 많았던 상황이라,
당시 외교부 출입기자였던 필자가 급히 중국 현지에 투입됐다.

보통은 중국에 갈 때도 취재를 위한 비자를 받고 입국하지만, 통상 2~3일 씩 걸리는
비자 발급 기간을 마냥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워낙 급하다보니, 비자도 받지 않은 채 '중국행' 대한항공에 올라탔는데,
다행히 '도착비자'라는 제도가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여행사를 통해 '도착비자'를 신청하니 우리돈 10여만원 정도 지불하자
베이징 공항에 현지 여행사 직원이 필자와 카메라기자, 오디오맨의 비자를 이미 만들어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여하튼, 무작정 도착한 베이징에서 우리 방송사는 숫적인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당시 최대규모의 취재인력을 급파한 일본의 후지TV 취재진들과 '얼라이'를 맺었다.

우리는 특파원까지 포함해 6명의 인력이었지만, 후지TV는 무려 26명을 동원했다.
그만큼 김정일 전 위원장의 방중 행보는 일본인들에게 빅 이슈였던 것.

후지는 여러 팀으로 나눠 김 전 위원장의 행보를 뒤쫓았다. 첩보전을 방불케했다.
김 전 위원장의 특별열차를 뒤따라가며 실시간으로 위치를 파악해 자기들끼리
정보를 공유했다. 김 전 위원장이 창춘역에서 내렸다는 정보가 입수되면
근처 호텔을 샅샅이 뒤져 숙소를 찾아냈다.
당시 그럴 엄두를 못냈던 우리 취재팀은 솔직히 좀 당황했다.

여하튼, 김 전 위원장이 가는 곳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던 후지TV 취재팀은
왠일인지 난징에서 헛다리를 짚는 바람에 새로운 화면을 한컷도 잡지 못했다.

이때! 며칠째 후지TV 취재진들의 도움만 받던 우리 방송사 취재팀이
절묘한 성과를 올렸다.

김 전 위원장의 특별열차는 물론 난징역에서 임시 숙소였던 국빈관으로 이동하는
그의 마이바흐(Maybach) 행렬까지 2미터 근접촬영에 성공한 것이다.


당시 키홀더 몰카로 촬영한 김정일 전 위원장이 마이바흐 차량

당시 난징 국빈관 진입도로 앞에서 관광객을 가장한 필자와 취재진은 개미떼처럼
깔려있던 공안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우리로 치면 새우깡 같은 과자 한봉지씩
사서 그걸 게걸스럽게 먹으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과자를 거의 다 먹었을 무렵, 코앞으로 공안 차량이 먼저 지나가더니 곧이어
김정일 전 위원장의 수행 차량들이 나타났다.

당연히 보통의 캠코더나 일반 취재장비로는 그 장면을 찍을 수 없었다. 카메라가 보이면
중국 공안들이 무조건 다가와 압수했으니까.

이때 활약한 장비가 당시로선 최신형 몰카였던 '키홀더 몰카'였다.
손바닥 안에 살며시, 그 녀석을 쥐고 있다가, 김 전 위원장이 지나갈 때
각도를 이리저리 맞춰가며 은밀한 촬영을 시작했다.

차량이 모두 지나간 뒤, 나와 카메라기자는 소리없이 서로 바라보며 성공 싸인을 나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뒤 몇시간 후 벌어졌다.
난징역으로 돌아가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열차를 촬영하기 위해 역사 근처를 서성이다가
나를 수상히 여긴 중국 공안 네명에게 둘러쌓인 것.

말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필자는 홀로 난징역사 안의 공안 사무실로 연행됐다.
(다행히 카메라기자는 잡히지 않았다.)

당시 나에겐 지갑과 휴대전화, 키홀더 몰카가 소지품의 전부였다.

흥미로운 건, 내 걱정과 달리 중국 공안들은 키홀더 몰카에는 전혀 의심을 갖지 않았다.
오로지 내 휴대전화의 사진 파일들만 일일이 검색했는데,
내 사진을 다 뒤지는데 거의 한시간반 걸렸다.

그 휴대전화는 아무리 뒤져봐야 세살짜리 우리 딸 사진밖엔 없었다.
다행히 난징시청 소속의 고위 공무원 중 한명이 통역을 위해 나타났다.
MBC 취재진이라고 밝히자 여권번호를 따고 이름을 딴 뒤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는 풀어줬다.

잠시 압수했던 키홀더 몰카는 무사히 내 손에 다시 쥐어졌고.
아, 방송기자에게 첨단 몰카란 얼마나 중요한 취재장비인가....새삼 뼈져리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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